<2010, 11 월 버버리 광고 캠페인 >

코트의 보통명사가 돼버린버버리 일반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차대전이 끝난 뒤였다. 전후 전세계 영화팬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카사블랑카 험프리 보가트와 1차대전을 배경으로 영국군 장교(로버트 테일러) 무용수(비비안 ) 사랑을 소재로 애수 로버트 테일러는 버버리 코트의 유명세를 가져다준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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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워털루 다리 위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과거를 회상하는 로버트 테일러의 감동적인 연기는 국내에서도 1960년대로이패션버버리 붐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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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의 역사는 1856, 스무살 나이의 토머스 버버리가 영국 햄프셔 베싱스톡에 포목상을 열면서 시작됐다. 당시 스포츠웨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토머스는 1879 방풍·방수가 뛰어나지만 가볍고 통풍성이 좋은개버딘’(Gabardine)이라는 직물을 개발하면서 성공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개버딘은 미리 방수처리한 면사를 촘촘하게 직조한 한번 방수처리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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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버딘을 상표등록한 토머스는 아들까지 사업에 참여시켜 회사 이름을 ‘Thomas Burberry & Sons’ 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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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는 기능성 의복으로의 명성을 이어 트위드나 가죽 등을 소재로 바람을 막아주는 롱코트를 주로 생산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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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 국왕인 에드워드 7(1841∼1910) 토머스 버버리의 개버딘 코트를 입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버버리를 가져오게라고 말한 것이 개버딘 코트가 왕실지정 명품의 프리미엄, 명성을 보장해 주었고, 오늘날 버버리 패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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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1 세계대전(1914∼18) 중에 영국의 육군성과 해군성이 버버리를 공식 트렌치(트렌치는 전쟁터의참호 말하는 것으로 영국의 다른 패션회사 아쿠아스톰이 만든 코트) 코트로 인정하면서 다른 신화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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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견장과 가죽 허리띠, 그리고 D 링을 응용해 오늘날 트렌치 코트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버버리는 1차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들에게 50만벌에 달하는 전투용 레인코트를 보급하면서트렌치 코트 대명사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것은 버버리의 명성을 유럽 각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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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년대 들어 특수 개버딘 직물에 버버리 특유의 타탄체크 문양의 안감을 조합시킴으로써 오늘날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버버리 룩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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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토머스 버버리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 1955 그의 아들인 아서 마이클이 은퇴함으로써 버버리는 GUS (Great Universe Store)그룹이 소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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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가 트렌치 코트로 거둔 성공은 버버리의 독특한 격자무늬와 함께 세계 패션사에서 유례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국적이고도 귀족적인 느낌을 주는 격자무늬는 지난 세기를 풍미할 정도로 오랜 시간 인기를 누려왔다. 그러나 100 가까이 한가지 스타일만 줄기차게 고집했던 버버리는 1990년대 들어 한때 브랜드의 시장퇴출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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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의 이미지가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노년층의 옷으로 고착되면서브랜드 노화현상이 발생하게 것이다. 또한, 확장전략의 일환으로 해왔던 무분별한 브랜드 라이센싱 사업으로 인한 품질관리실패와 과다 수요창출로 인한 브랜드 가치하락을 초래했다. 명품은 수요가 너무 크면 이상 명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GUS
그룹이 1997 미국의 최고 리테일러 한사람인 로즈 마리 브라보(Rose Marie Bravo) 버버리사업부문 CEO 영입하면서 버버리는 최근까지 변신을 거듭해 왔다.

버버리의 브랜드 현대화작업을 위해 CEO 브라보는 몇년간의 세밀한  고객 분석을 통해서 의류에서는 폴로와 알마니 사이에 니치마켓이 존재하고 엑세서리에서는 코치와 구치 사이에 버버리를 위한 니치마켓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브라보는. 버버리는 고풍스러운 체크무늬 디자인에 질기고 기능성 제품에서 혁신적이고  감각적인 젊은 패션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기위한 브랜드 리포지션닝을 하기 시작한다.

버버리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확장전략으로 버버리 페밀리 브랜드를 만든다. 버버리 런던은 버버리의 핵심브랜드이다. 그렇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젊고 패션에 민감한 고객층을 사로잡기 위해서 가격의 버버리 브랜드제품을 제공한다. 또 다른 예로 토마스버버리(Thomas Burberry)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만 있고 버버리 블루앤블랙 라벨은 젊은 여성과 남성을 타겟으로 일본에서만 구매할 있다.

그리고    샌더의 수석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니체티(Robert Menichetti)영입으로 제품 디자인의 혁신적인 변화 시도와 현대적인 감각에 맞춘프로섬(Prorsum)’ 라인의 확장 변형체크 무늬 개발하였다. 무늬는패션과거의 버버리 브랜드에 연속성을 아니라 혁신과 젊음의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실 프로섬은 성공했다고 이야길  하지만 파이낸셜 퍼포먼스로 보면 적자이다. 그렇지만 버버리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바로 브랜드 리포지션의 상징이다. 찰스 왕세자와 섹시한 반항적인 젊음의 패션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패션의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며 버버리 브랜드의 부활을 알렸기 때문이다.

또한 상품라인의 다양화도 브라보가 이룬 혁신전략의 하나이다. 버버리는 향수브랜드인 버버리 브릿(Burberry Brit) 론치하면서 젊은 층의 여성들에게 쉽게 버버린 브랜드를 접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할로효과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위한 광고전략과 유통 전략을 있다. 세계 각국의 주요 명품거리에 매장을 오픈하고, 기존의 매장을 과감히 정리하고 라이센싱 계약이 끝난 업체들중 수준에 미달하는 회사는 계약을 종료하는 대대적 유통망 개편 실시하였다.

광고전략으로 보그, The face등에서 일한 패션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Mario Testino) 기용하고 모델 스텔라 테넌트(Stella Tennant) 광고 플라이트( ad flight) 1998 론치하였고 이어 1999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 모델로 활동면서 버버리의 이미지는 날로 새로워지기 시작하였다. 혹시 이때 광고 캠페인이 궁금하신 분을 위해서 사진을 첨부한다.

< 1998년 버버리 광고 켐페인 - 스텔라>

<2000년 버버리 광고 켐페인- 케이트 모스>

<2000년 버버리 광고 캠페인- 케이트 모스>

2001
년부터 로베르토에 이어 구치와 도나 카렌(미국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도나 카렌의 인터내셔널 패션그룹)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 기용하였고 이러한 변신에 힘입어 지난해 상반기 버버리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에 비해 200% 넘게 신장되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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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버버리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유로통상이 1986년부터 직수입하면서부터다. 전세계 버버리 매출의 10% 한국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버버리 상표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호는 유별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해외여행이 처음 풀렸던 시절, 버버리는 해외 쇼핑관광의 표적이 되기도 했고, IMF 한파 속에서도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하면서명성 이어왔다.
참고로 2009년 럭셔리 브랜드 가치 순위 조사결과가 있어서 첨부합니다. 가치는 달러로 산정을 한 것이고 출처는 http://www.rankingthebrands.com/The-Brand-Rankings.aspx?rankingID=2&nav=category. 단위는 밀리언달러입니다.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 있는 내용을 번역하려고 했는데 이미 되어 있는 것이 있어서 조금 내용을 더해서 올렸습니다.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아직 다 못했습니다.
Posted by wis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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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괜찮은 친구였다. 젊은 시절 스탠포드에서 공부할 시절 법대 다니는 와이프랑 번갈라 바쁘게 아기를 돌보며 살았다고 하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사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깐 지금 이베이에 대표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 도나호는 최근 비지니스의 키드렌드를 4가지로 요약하였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존도나호의 어조는 누구보다도 명쾌했다고 할까?

1. 모바일
2. 로컬
3. 소셜
4. 디지털 소비 - 아이패드, TV

이런 비지니스 트렌드는 분명히 유저의 행태를 바꿀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기업이 끊이 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하면서 넷스케이프와 야후가 그랬고 이베이와 페이팔도 그런 경우가 될 수도 있고 구글도 요즘은 페이스에 밀리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앞으로 3년후는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따라서 혁신을 해야 하는데 혁신은 다음의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고 하였다.

1. 핵심사업의 혁신(Core Innovation) - 말그대로 현재 핵심비지니스의 혁신을 말한다.  그런데 새로운 고객은 변화를 원하지만 현재 고객은 익숙한 환경의 변화를 싫어한다. 따라서  현재 고객의 니즈에 맞추려고 하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혁신적인 변화를 피하게 되고 이게 바로 많은 성공한 회사가 혁신을 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그는 이런 혁신을 "Least sexy stuff but most important" 라고 하였다.

2. 제이슨 이노베이션 (Social Innovation) - 모바일 커머스와 모바일 페이먼트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인데 이게 가장  쉬운 혁신이다. 왜냐면 기존의 사업의 인터페이스를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급속히 이베이의 모바일 매출이 성장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왜 이베이는 그루폰을 못만들었을까 의문이 드는 대목이 여기서였다.

3. 파괴적인 이노베이션(Distruptive Innovation) - 이것은 구글, 이베이, 페이팔,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거쳐왔던 혁신으로 성공확률로 이야기 하면  1/1000이라고 했고 큰 회사 입장에서는 인수합병을 통해서 즉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서 주로 자기들은 한다고 이야길 하였다.  그래서 마일로를 인수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페이팔이 앞으로 이베이의 매출을 뛰어 넘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였다.


그와의 CNBC와의 인터뷰를 보고 싶다면
http://www.cnbc.com/id/15840232?video=1314093048

Posted by wis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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